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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지리산> 혼자 세석 1박 2일 화대종주2

랜턴 줄이 갑자기 끊어져 랜턴과 스틱을 같이 잡고 등산을 시작했다.

랜턴 불이 이렇게 약했던가?

아무도 없는 등산로에서 나 혼자만의 랜턴불빛은 한없이 약하게만 느껴졌다.

겨우 발밑 정도만 희미하게 보였다. 차라리 잘됐다. 발밑말고 더 시야가 넓어졌다면 무서움이 가중됐을 것이다.

 

씩씩하게 발을 내딛었는데 곧 두려움이 찾아왔다.

여러가지 무서운 상상이 스쳐지나갔지만,

시원한 계곡소리에 집중하고

이상한 움직임이 포착되면 귀여운 다람쥐가 움직이는거야 라고 생각했다.

 

생각을 바꾸고 숲한테 괜히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이 시간에 방해해서 미안해 잘부탁해. 너네 입장에서는 발소리 스틱소리까지 층간소음 장난아니겠다 그치?

요런 오글거리는 인사도 해보며

 

숲을 포근한 공간으로 상상해보니

무서움이 이내 사라졌다.

그리고 진짜 포근하게 느껴졌다.

 

무넹기에 다가올수록 경사가 심하고 무엇보다 너무 어두워서

얼른 해가 뜨기를 바랐다. 빛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나중에 타임라인을 정리해보니 화엄사-노고단 화장실까지 2시간 33분이 소요되어 있었다.

4시간 30분 예상하고 왔는데 생각보다는 순조로운 출발이었다.

노고단 화장실에는 세면대가 있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그리고 이후 다른 대피소에서는 세면대를 찾아볼 수 없었다. 자연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취사실에서 에너지젤 1포를 먹었다. 다른 음식은 들어가질 않았다.

로켓배송되는 제품으로 급하게 샀는데, 플라시보효과인지 몰라도 효과가 최고였다.

힘이 났고 발걸음이 가벼웠고 내가 지나가자 다른 등산객분들이 씩씩하게 잘간다고 한마디씩 해주셨다. 더 힘이 남.ㅎㅎㅎ 감사합니다~!

 

돼지령 임걸령샘까지는 와 종주중에 이런 호사가 있나 할 정도로 길이 평탄했다.

내가 사랑하는 능선길. 이런 종주라면 열 번도 더 하겠다.

편안한 길을 즐기며 그 유명한 임걸령샘을 나도 맛보았다! ㅋㅋㅋ

철분맛이 느껴졌다. 이상하게 지리산 물을 먹으니 더 힘이나는 느낌적 느낌!

(굉장히 종주뽕에 취한 후기로 변질되고 있는 것 같지만 내 감정을 솔직하게 기록하려 합니다.)

 

노루목에 도착했을 때가 일곱시 이십분.

갑자기 벗어놓은 배낭들이 보여서 뭐지 싶었는데 아~이게 바로 반야봉 갈려고 다른 등산객들이 잠시 두고간 가방들이란걸 깨달았다.

반야봉은 다음에 가자, 패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세석대피소에 제 시간에 도착하지 못할까봐 굉장히 서두르게 가고 있었다.

내 수준에서 최대한 빨리 가려 노력했다. 산에서 노숙할 수는 없으니 ㅠ ㅠ

삼도봉도 보고 

토끼봉 넘어갈 때는 네가 무슨 토끼봉이냐~ 살짝 열도 받아주고. ㅋㅋㅋ

중간중간 급하게 기록하고 싶을때 음성메모 해놓은거 들어보니

노루목부터 길 XX 라고 해놨네…^^;;

아무튼 노루목부터는 노고단~돼지령 같은 힐링 길은 절대 아니었다. 

 

등산을 하면서 행동식을 정말 행동식처럼 먹어봤다.

앉아서 여유있게 먹다가는 세석까지 못 갈 것 같았다.

솔직히 내 등력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터라 내 속도도 잘 몰랐고

최대한 최대한 빨리 가려고 노력할 수 밖에 없었다.

등산하면서 억지로 빨리 빨리 씹어 삼켰다. 배는 완전 고픈데 식욕은 없고 그래도 먹은만큼 갈 수 있다는 어느 분의 말도 떠올리며 에너지 보급하는 차원에서 먹어줌.

 

가까스로 벽소령 대피소 도착. (11:27)

중간에 알바도 했다…

변명을 좀 하자면 도저히 사람이 갈 수 없는 큰 바위가 놓여있는데 그게 길이라고 생각을 못했다.ㅋㅋㅋㅋㅋㅋㅋ근데 그 바위를 넘어서 가는 것이었다^^

예상보다 여유있게 도착해서 매우매우 기뻤다!!

세석까지는 3시간 정도 걸린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나는 세석에 체크인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조금 긴장이 풀렸다.

하지만 세석까지 길이 가장 길고, 힘빠진다고 들었기에 긴장을 늦추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 유명한 세석 계단길은 어떨까 궁금하기도 했고 ㅎㅎㅎ

어떤 유튜버가 세석은 던전이냐고 했던 말이 생각나면서 왜 그랬을까? 궁금하기도 했는데 정말 세석은 던전이 맞았다! ㅋㅋㅋ 나올 것 같으면서도 안 나옴. 꽁꽁 숨어있는 세석대피소

 

계단은 생각보다는 괜찮았는데 스틱을 짚지도 못하게 뚫어놓은 계단은 미웠다. 

드디어 세석대피소 도착!!!(15:06)

여유있게 체크인을 했다. 하지만 나의 다리는… 긴장이 조금 풀리면서 통증이 더 심해졌다. 이상하게 비골쪽이 너무 아팠다. 

출발 전에는 무릎이 좀 상태가 안좋았는데 오히려 무릎통증보다는 비골쪽이 더 심하게 아팠다. 흑. 발바닥도 아프고.

 

먼저 와계신 분은 여유있게 책을 읽고 계시길래

인사를 드리고 대화를 나눠보니 시인이셨다!!! 

작가이신것 같아서 조심스레 여쭤보니 맞았다~!!! 혼자 종주하느라 심심했던 입이 확 뚤리면서ㅋㅋ 대화를 많이 나눴는데 정말 멋진 분이셨다.

나보다 훨씬 연배가 있는 분이셨는데도 꾸준히 등산을 계속하시고, 다리 아픈 나를 대신해서 불도 켜주시고.. 움직여주시고 ㅠ ㅠ 쏘 스윗.

 

이번 산행을 통해 다시금 성선설에 마음이 더 기울었다.

지리산에서 좋은 분들을 참 많이 만났다.

 

중간중간 응원해주신 분들

 

중간에 알바..를 좀 할 때 길을 알려주신 고마운 커플분들께 용기 내어 커피타드시라고 스틱커피를 드렸는데, 되려 나에게 또 먹을거를 주신다. 감사해서 드린건데 또 감사함의 연속이다.ㅎㅎㅎ

 

내 옆자리에 주무신 분은 종주성공 응원과 함께 포도와 물도 나눠주시고 

넘나 러블리한 분이셨다. (무사히 하산하셨길!!!)

 

그렇게 따뜻한 세석대피소에서 밤이 깊어갔고

완전 곯아떨어졌다..ㅋㅋㅋ

 

세석대피소는 사랑이었다. 화장실 (나름)깨끗, 뜨끈뜨끈.